주차 중 전기차에 불이 나면, 옆 차 피해는 누가 물어주나

7월 시작된 '전기차 화재 안심보험'과 정부 배터리 인증제. 원인을 몰라도 먼저 보상하는 구조가 생겼다.

사진: Wolfmann / Wikimedia Commons (CC BY 4.0)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한 대에 불이 나면 피해는 그 차에서 끝나지 않는다. 주변 차량과 건물 설비까지 번지기 쉽고, 화재 원인을 밝히는 데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동안 피해자는 누구에게 보상을 청구해야 할지 모른 채 기다려야 했다. 2026년 7월부터는 이 공백을 메우는 장치가 하나 생겼다.

원인 따지기 전에 먼저 보상

기후에너지환경부는 7월 1일부터 '전기차 화재 안심보험'을 시행했다. 주차하거나 충전하는 중인 전기차에서 불이 나 다른 사람의 차나 건물에 피해가 생기면 이를 보상하는 제도다. 한도는 사고 한 건당 최대 150억 원, 연간 최대 450억 원이다.

핵심은 화재 원인과 관계없이 보상한다는 점이다. 전기차 화재는 원인 규명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선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책임 관계는 보험사들이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초 등록일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은 전기차가 대상이다.

차주는 가입도, 보험료도 필요 없다

이 보험은 개인이 드는 상품이 아니다. 보험료 약 60억 원 가운데 20억 원은 정부가, 40억 원은 전기차 제작사와 수입사가 나눠 낸다. 운영은 DB손해보험, 현대해상, 삼성화재가 맡는다. 차주는 별도 절차 없이 자동으로 보장을 받는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의무다. 올해 정부 보조금 지침은 이 보험에 가입한 제작·수입사의 차량만 구매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참여 업체 명단과 약관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ev.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보장 범위는 '제3자의 대물 피해'다. 불이 난 차량 자체의 손해는 기존처럼 차주가 가입한 자동차보험의 자기차량손해 담보 등으로 처리해야 한다. 자신의 보험 조건을 한 번쯤 점검해 둘 필요가 있다.

보험이 '사후'라면, 인증제는 '사전'

보험이 사고 이후를 책임진다면, 배터리 인증제는 사고 이전 단계를 다룬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 2월 17일부터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와 배터리 이력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제작사가 스스로 기준 충족 여부를 확인하는 자기인증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정부가 시험을 거쳐 직접 인증한다. 2003년 자기인증제가 도입된 뒤 약 22년 만의 변화다. 시험은 진동, 열충격, 연소, 단락 등 12개 항목으로 짜여 있고, 기준을 통과한 배터리에만 인증서가 나온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정부가 2024년 9월 내놓은 화재 안전 관리대책이 이 제도의 출발점이 됐다.

이력관리제는 배터리마다 고유 식별번호를 붙여 자동차등록원부에 올리는 제도다. 리콜 등으로 배터리가 교체되면 바뀐 번호도 함께 관리된다. 정부는 배터리 단위의 전 주기 이력 관리 시스템을 2027년까지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운전자가 할 수 있는 일

제도가 갖춰졌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026년 10월 기준으로 운전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내 차가 리콜 대상인지 정기적으로 조회하고, 하부 충격이 있었다면 점검을 받는 습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파트에 산다면 단지 내 충전 구역의 소방 설비와 관리 규정도 살펴볼 만하다. 보상 장치는 마지막 안전망일 뿐, 첫 번째 안전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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